2012.4


천안에서 이천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기숙사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숙사는 병원 옆 산속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2층으로된 건물이었는데 마치 산속 오두막집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배정받은 내 방은 복도 끝에 있었다.

문열고 들어가보니 룸메이트 J 의 침대는 안쪽에 있었다.

J의 자리 곳곳에는 영어로 된 글들이 적혀 있었다.

병원 면접볼때 간호부장님이 영어 잘해야 한다며 이야기 했는데

나 스스로 영어 못하는게 너무 비교되어 보였다.

스치듯 지나간 생각이 '토익 공부 해야하나?' 였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J만 특출나게 영어를 잘하는 거였다.

영어로 회화가 가능했고 영어 논문을 읽을수 있었으니 말이다.


점점 J의 자리를 눈으로 스캔하게 되었다.

침대위 상두대에는 향수가 놓여져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라인의 남자향수도 있었다.

나는 그 향이 좋았지만 차마 남자향수라 사지 못하고 비슷한 향의 여자향수를 구매했는데,

이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건 하는 아이라는걸 알수 있었다.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고 짐을 풀었다.

이브닝 근무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J는 함박 웃으며 유쾌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조금씩 지내다보니 유쾌한 만큼 시끌시끌한 면도 있었다.


불편한 부분도 조금씩 생겼다.

내 근무는 자야하는 근무인데 이친구는 이어폰을 꽂고 영화를 본다거나,

늦은밤까지 장시간 조용히 통화를 한다던지의 부분이었다.

처음부터 양해를 구하고 한 행동이긴 하지만 장시간동안 하니까 짜증나기도 했다.

지내다보니 서로의 성격을 파악해가며 이해하고 넘어갔던것 같다.

J는 외동딸이다보니 누군가와 사적인 공간을 나눠서 써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싫은건 아니지만 공간을 나눈다는거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거 같았다.

서로 어쩔수 없는 부분이니 이해하고 넘어가는거였다.


이런 사소한거에 우린 집중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J의 쾌활한 성격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우울감이 많은 사람이다. 휴식도 집에서 쉬면서 지내야 휴식이었고 마땅한 취미생활도 없었다.

기분전환을 시키는 방법은 음악듣는것 밖에 없었다.

산책을 하지도 않았고,  음식을 좋아하긴 하지만 즐겁게 누군가와 대화하며 맛 자체를 즐겨본적도 오래되었다.

이 모든것을 J와 차츰 하면서 밝은 에너지를 받았던것 같다.

나보다 나이가 4살 차이 났으나 생각하는것도 깊었다.

그래서 난 언니인듯 하면서도 친구였다.


같이 생활하면서 시간이 된다면 기숙사에서 밤에 불끄고 노트북 화면에서 나오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요리하는걸 좋아하는 J와 함께 음식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나이트 근무 전에는 같이 구내식당 가서 밥먹고 난 뒤 산책하기도 하고 

방에서 크게 음악을 틀고 듣기도 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가끔 J는 절에서 피우는것 같은 향을 피우거나 향초를 켰다.

여러가지 좋은점이 많았고 어느덧 나 스스로도 여러가지를 하고 있었다.

기숙사 베란다 옆 흔들그네에서 독서도 하고 이젠 기숙사 생활을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2년 넘게 같이 생활 하다가 J는 좀 더 넓은 기숙사로 옮기고 싶어 했다.

J가 방을 옮기고 난 이후 혼자서 방을 쓰는게 외로웠다.

한달후 다른 룸메이트 M이 들어오긴 했지만 영혼까지 평온한 느낌은 아니였다.


따로 지낸지 6개월 지났을 무렵 누군가는 J가 있는 기숙사로 옮겨야 한다길래 자원했다.

J와 함께 방쓰는 조건으로 옮기는거였다. J도 흔쾌히 찬성했다.

새로 옮기는 기숙사는 방은 넒지만 학생간호사와 함께 공용공간을 써야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감수해야했다.

그래도 J와 함께 방을 다시 쓰게되어 좋았다.

그리고 일하면서 다시는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기회가 없으니 즐겁게 기숙사 생활을 즐겼다.

2016년 이젠 둘다 퇴사해서 다시 룸메이트가 될수 없지만 나에겐 최고의 룸메이트 였다.


정신과 근무 할때 기숙사 제공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서울에서 큰 규모의 정신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마이너 파트이기에...)

규모가 있는 정신병원은 경기도와 각 지방 외딴곳에 자리하고 있어 근무자들을 위한 기숙사는 필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외딴곳에 발이 묶이다 보면 답답해져 해소할 무언가를 찾아야만 한다.

근무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는 친구들을 보면 이런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생기는 부분이 크다.

그래서 스스로 기분전환 할수 있는 활동들을 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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